일상다반사

[사회 AI] 문조털래유라는 멸칭에 대한 비판? 생각?

blackDmith 2026. 8. 27. 07:39

비난 갈라치기 이런 네거티브 적인 것들이 왜 이렇게 자극적이고 끊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야.
나도 그런 면이 있었어. 저짝은 인간 같지도 않고, 이성적으로 저 존재들을 봐도 봐도 이해가 안되고, 그냥 뭐랄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존재...
예전에 나 어릴 적에 북한 빨갱이 멧되지 얼굴 벌겋게 막 그런 만화나 이미지로 막 학교에서 가르킨 적이 있어.
진짜 그때는 북한 사람들 무슨 괴물인줄 알았던 것 같아.
한국의 페미니즘? 레디컬 페미니즘인가? 이게 괴물 같이 변한 이유도 일베를 미러링해서 그들을 비꼰다는 것이 시작인 것 같아.
괴물을 응징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즉 괴물의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이 결국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감을 깨닫지 못하고 괴물이 되는...
나도 저짝을 윤두창, 아노우 등등 멸칭을 쓴 것도 있어... 여전히 그게 뭐? 어때서 싶긴 하지만...
이게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어...
그래서 안할려고...
이런 생각이 시작된 계기는 있어.
김민석을 칭할때 김민새니 뭐니... 멸칭을 쓰더라고... 
문조털래유라고 멸칭의 의미를 담아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게 우리진영 내부에서 상대방도 아니고 같은 편이었던 존재들에게 할 소린가? 싶은 생각이 들고서는...
딱 정확하게 이름이나 직책을 사용하게 되더라고.
갈라치기 비난 네거티브... 이런건 뭔가 좀 마약 같다는 생각도 들어...
뇌가 도파민에 쩌는 건지... 그런 것이 아니면 더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습관이라고 보기엔 그걸 넘어선 뭔가 중독적인 것이 있고...
이것은 발전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

 


응. 지금 네가 도달한 생각에는 꽤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고 봐.

“내가 상대를 미워해서 멸칭을 쓰는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런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행위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기 시작한 것.

이건 꽤 큰 차이야.

그리고 네가 말한 “마약 같다”는 비유도 상당히 적절한 부분이 있어. 다만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도파민 중독” 하나로 설명되는 현상은 아니야.


왜 비난과 멸칭이 그렇게 맛있을까?

사람을 실명이나 직책으로 부르는 것과

“김민석”

이라고 하는 것,

“김민새”

라고 하는 것은 정보량은 거의 같지만 정서적 기능은 완전히 다르지.

후자는 그 사람을 한순간에 하나의 조롱 대상으로 만들어버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문제가 아주 간단해져.

저 사람은 왜 저런 정책을 주장하지?
어떤 이해관계가 있지?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저 새끼는 원래 저런 놈.”

으로 끝나버리거든.

그게 굉장히 편해.

복잡성을 제거하고, 내 편과 네 편을 확실하게 나누고, 내가 옳다는 감각까지 준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이 같이 웃거나 동조하면 사회적 보상까지 생겨.

그래서 반복하기 쉬워지는 거야.


특히 네가 말한 '괴물'이라는 비유가 재미있어

어릴 때 북한 사람을

뿔 달린 괴물처럼 묘사한 그림

으로 접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건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게 아니야.

상대방을 인간에서 비인간으로 내려놓는 작업이야.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굉장히 쉬워져.

저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라는 전제가 사라지니까,

저들에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로 넘어가기 쉬워.

그리고 이게 정치에서 굉장히 위험한 지점이야.


네가 말한 "괴물을 응징하다 괴물이 된다"도 정확히 짚은 부분이 있어

이런 현상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에서 꽤 흔하게 나타나.

처음에는

“저쪽이 사람을 모욕한다. 그러니 우리도 똑같이 해주겠다.”

에서 시작할 수 있어.

그런데 재미있는 문제가 생겨.

처음에는 수단이었던 멸칭이 어느 순간 문화가 돼.

처음에는

“저들의 언어를 비판하기 위해 저들의 언어를 흉내낸다.”

였다가,

나중에는

“우리끼리도 저 표현을 쓰면서 웃는다.”

가 되고,

더 나아가면

“저 표현을 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가 되어버려.

그러면 원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공격적인 언어 자체가 집단의 정체성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네가 말한

“괴물의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 결국 스스로 괴물이 되어감을 깨닫지 못한다.”

는 표현이 꽤 날카로워.


그리고 여기서 네가 김민석의 멸칭을 보고 느낀 불편함이 중요한 것 같아

이 부분이 나는 오히려 이번 생각의 출발점이라는 게 재미있어.

상대 진영 사람을 조롱하는 것과,

내가 같은 진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똑같은 멸칭을 붙이는 것은 느낌이 다르잖아.

왜냐하면 후자는 어느 순간

“우리가 생각이 다르면 우리 편도 인간적으로 존중할 필요가 없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버리거든.

그리고 그 질문에서 한 단계 더 가면,

“그럼 정치적 반대자에게는?”

라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와.

결국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원칙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네가 예전에 사용했던 "윤두창", "아노우" 같은 표현도

나는 네가 지금 그걸 굳이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때는 그렇게 느꼈고, 정치적 분노가 있었던 거니까.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그때 내가 왜 그 표현을 사용했지?”

를 관찰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잖아.

“어? 나도 영향을 받았구나.”

이게 굉장히 중요해.

자기 자신에게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 아니야.”

라고 선을 긋는 것보다,

“나도 저런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저런 언어를 쓰게 되는구나.”

라고 보는 게 훨씬 건강한 인식이라고 생각해.


다만 한 가지는 구분했으면 해

멸칭을 안 쓰는 것 =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

은 아니야.

이건 상당히 중요해.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정치인을 정말 싫어할 수 있어.

정책도 강하게 비판할 수 있고,

"나는 이 사람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의 판단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치적 행위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본다."

라고 아주 세게 말할 수도 있어.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지는 않겠다.”

라고 할 수 있어.

이게 오히려 비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을 욕하는 대신 행동과 정책을 공격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여기서 네가 말한 "발전적이지 않다"가 정말 중요한 결론이야.

멸칭과 갈라치기는 굉장히 강한 에너지를 줘.

그런데 그 에너지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

처음에는

분노 → 관심 → 행동

이 될 수 있지만,

반복되면

분노 → 조롱 → 동조 → 더 강한 분노 → 더 강한 조롱

이라는 순환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리고 어느 순간 정치적 목표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져.

그게 네가 말한 "마약 같다"는 감각과 닿아 있어.


그래서 나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꽤 좋은 방향이라고 봐.

굳이

“앞으로 나는 절대 정치인을 욕하지 않겠다.”

같은 거대한 규칙을 만들 필요도 없어.

그냥 아주 단순하게,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자.”

이 정도면 충분해.

김민석은 김민석이라고 부르고,
이재명은 이재명이라고 부르고,
윤석열은 윤석열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의 이 정책은 정말 싫다.”

라고 말하면 돼.

그게 오히려 훨씬 강한 비판이야.

왜냐하면 상대를 인간으로 인정한 상태에서도 그 사람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네가 지금 이걸 깨닫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 분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아마 앞으로도 어느 순간

“아 씨발 저 인간 또 저러네.”

할 수 있어. ㅋㅋ

그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도 없어.

중요한 건 그 다음 단계에서 멸칭을 하나 더 만들어내느냐, 아니면 “대체 왜 저런 판단을 했을까?”로 돌아가느냐인 것 같아.

나는 후자가 네가 말한 “발전적인 방향”에 훨씬 가깝다고 봐.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하면 정치적 판단이 오히려 덜 뜨거워지는 대신 더 날카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상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면 분석할 필요가 없어.

하지만 인간으로 남겨놓으면,

“도대체 인간인 저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를 계속 물어야 하거든.

그때부터 정치가 응원전이나 증오전이 아니라 분석 대상으로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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