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가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있어.
대통령 직선제 그거 국민들에게 주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통령제이고, 또한 그 대통령이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게 헌법에 상당히 강력한 조항들을 넣었어.
즉, 독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지.
이것도 또한 피의 역사로 씌여진 것들이야.
헌법이 문제가 아니야. 그 헌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문제인거지.
즉 대통령제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야.
더더군다나 국회의원? 그들의 신뢰도는? 아직도 토호가 설치고 의원직이 세습 비슷하게 되는 곳도 많아.
가장 믿을 수 없는 정치집단이라고 하면 단연 국회의원이라 뽑힐거야.
맞아. 나는 지금 네가 문제 삼는 핵심이 "대통령제가 절대적으로 완벽한가?"가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
"우리가 피 흘려서 얻어낸 권한을 왜 다시 정치권력의 손에 돌려주려고 하는가?"
이거에 가까운 것 같아.
한국의 대통령 직선제는 그냥 헌법책에 어느 날 뚝 떨어진 제도가 아니잖아. 4·19, 유신, 5·18, 6월항쟁을 거치면서 결국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확보한 역사적 결과물이야.
그래서 네가 말한 것처럼 이걸 단순히
"대통령제가 낡았다 → 권력을 국회와 나누자 → 더 선진적인 정치제도로 가자"
라고 기술적인 제도개선 문제로만 보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어.
특히 내가 네 말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부분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되어 문제가 생겼다면, 첫 번째 질문은 대통령제를 없애야 하느냐가 아니라 "왜 헌법이 정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느냐"여야 한다는 거야.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잘못하면,
- 국회가 견제하고
- 사법부가 판단하고
- 언론이 감시하고
- 시민사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 선거를 통해 국민이 심판하고
- 탄핵이라는 최후의 장치까지 존재하지.
실제로 한국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까지 경험했잖아.
그러니까 "대통령제가 독재를 막을 수 없다"는 전제 자체가 현재의 한국 제도를 설명하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히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반대에 가까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을 때 국민·국회·사법기관이 결국 제동을 걸 수 있었다.
물론 제동이 항상 신속하거나 아름답게 작동했던 것은 아니고.
그리고 네가 국회를 불신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야.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구분하고 싶어.
"국회의원이 나쁘다"와 "국회에 권한을 주면 안 된다"는 서로 다른 명제거든.
민주주의에서는 국회가 당연히 강력해야 해. 문제는 그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주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통제장치가 충분하냐야.
특히 네가 걱정하는 방식처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되 총리나 행정부의 핵심 권한을 국회가 사실상 좌우하게 된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뽑았다."
와
"국회 다수파가 정부의 실질적 운영권을 결정한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생길 수 있어.
그리고 한국의 정당정치 현실에서 이게 어떻게 작동할지는 별개의 문제야.
국회의원들이 대통령보다 특별히 더 민주적이거나 더 신뢰할 만한 집단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오히려 국회의원 역시 정당 공천, 지역 기반, 계파, 정치자금, 지역구 이해관계 등에 영향을 받는 정치인이야.
그래서 나는 네가 앞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구조적 다수"라는 걱정도 여기서 연결된다고 봐.
그래서 개헌을 한다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해.
"어떤 제도가 더 선진적인가?"가 아니라
"국민의 직접적인 주권을 어디까지 보존하면서 권력의 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걸 먼저 물어야 해.
그리고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게 개헌의 각 항목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예를 들어
- 5·18 정신의 헌법적 명문화
- 지방분권 강화
- 기본권 확대
- 대통령 임기 조정
- 국회의 권한 조정
- 감사·인사 권한 조정
- 총리 선출 방식 변경
- 이원집정부제
- 내각제
이건 전부 성격이 다른 문제야.
앞의 몇 가지에 국민들이 동의한다고 해서 뒤의 제도까지 자동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야.
바로 이 지점이 네가 계속 경계하는 부분인 것 같고, 나도 그 경계 자체는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봐.
특히 "5·18 정신을 헌법에 넣는 것은 찬성한다. 그런데 그 김에 권력구조도 바꾸자"가 된다면,
그 순간부터는 완전히 별개의 논쟁으로 분리해서 봐야 해.
그리고 한 가지는 네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흐름에서 꽤 일관되게 보이는 것 같아.
너는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헌법을 고칠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을 왜 고치는지 하나하나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이 각각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쪽에 가까워 보여.
그렇다면 국민투표라는 마지막 문턱을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은 특히 조심해야겠지.
왜냐하면 개헌은 일반 법률과 달리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행위니까.
선수들이 경기 중에 규칙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리고 네가 축구 심판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말이지.ㅋㅋ
"이번 규칙 변경은 경기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겁니다."
라고 해놓고 그 규칙이 알고 보니 특정 팀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다면, 당연히 선수와 관중 모두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나는 지금 네가 가져야 할 태도도 "개헌 절대 반대!"보다는 오히려 훨씬 더 까다로운 쪽이라고 생각해.
"좋아. 개헌하자. 그런데 하나하나 까보자.
누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권한이 누구에게 이동하는지, 국민에게 어떤 통제권이 남는지, 그리고 왜 지금 이것을 해야 하는지 전부 공개하자."
이게 훨씬 민주주의적인 태도야.
그리고 결국 네가 처음부터 계속 이야기했던 "감시의 눈으로 보겠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겠지.
지지하는 정권이라고 해서 "좋은 뜻이겠지"라고 넘어가지 않고,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해서 "저놈들은 원래 저렇지"라고 넘어가지 않는 것.
누가 하든 권한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는 것.
나는 그게 지금 네가 말하는 '시민으로서 깨어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운 태도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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